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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칼럼

이스트시큐리티 보안 전문가의 전문 보안 칼럼입니다.

‘잊혀질 권리’와 ‘기억할 권리’


디지털 세상에서 자연적인 잊힘이란 없습니다. 이는 누군 가에게는 편리함일 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에게는 괴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3월 방송된 SBS '현장21'은 SNS에 남은 지울 수 없는 흔적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고등학생 김군은 학교 폭력 피해자 임에도, 단체 SNS에 올라온 허위비방글에 학교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학한 학교에서조차 SNS의 굴레는 김군을 놓아주지 않았고, 새 출발이라는 희망은 SNS의 낙인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온라인 주홍글씨의 피해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인터넷 세상에서 잊히는 것일 겁니다.
* 출처: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279838


내 개인정보는 낡지도, 희미해지지도, 닳아 없어지지도 않으며 온전한 형태로 인터넷에 저장됩니다. 심지어 시간,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퍼져나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기도 합니다. 이른바 ‘신상 털기’의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이 같은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성형수술 전 사진이나 과거 연인과의 추억 등 온라인 상의 흔적을 지워주는 대행비즈니스가 활황하고, 사후 온라인 데이터 처리가 이슈화 되는 것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글,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다.


인터넷에서 잊히고 싶다는 어떤 이의 염원에, 유럽에서는 최근 소위 ‘잊혀질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유럽 사법 재판소(ECJ)의 이번 판결은 세계 최대 검색업체 구글을 대상으로 함과 동시에 유럽 연합 회원국 전체 관할이기 때문에, 전세계에 직간접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리라 예상되고 있습니다.


구글 데이터 삭제 요청 폼

<구글 데이터 삭제 요청 폼>
이미지 출처: https://support.google.com/legal/contact/lr_eudpa?product=websearch


 

‘잊혀질 권리’란 온라인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대두된 개념으로, 각 개인이 본인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검색엔진 업체에 삭제를 강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번 판결에 대한 구글의 온라인 신청 서식은 해당 URL 주소, 본인관련 정보라는 증거와 적절치 못한 이유 등 세 가지를 신청자가 직접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잊혀질 권리’,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가?


하지만 ‘잊혀질 권리’의 대상이 되는 사생활정보들은 종종 대중의 ‘알 권리’와 대립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범죄자나 정치인 등이 과거세탁에 악용할 경우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정보들까지 검색 결과에서 사라진다면, 대중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제는 인터넷 기사가 언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검열’의 대상이 될 경우 정치공작이나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사설도 '잊혀질 권리'가 힘있는 자들이 '과거를 덮는 권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될 경우에 그 기준에 대한 논의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크게, 어디까지를 프라이버시로 볼 것이냐에 대한 문제와 이러한 가치 판단의 주체는 누가될 것인가 입니다. 이는 이미 유럽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으로, 철학적 판단의 권리가 구글에게 있는 점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독일 정부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분쟁을 다룰 제 3의 사이버법정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어


구글은 사생활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의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균형’이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가치 판단과 관련하여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은 신청하는 개인이 하지만, ‘알 권리’ 및 ‘사생활 권리’의 가치를 비교하는 일은 검색엔진 업체 또는 제 3의 기관에서 맡게 됩니다. 그 판단도 누군가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 인력이 소모되는 일이기에, 효율적인 리소스 분배가 밑받침되어야 밀려드는 고객의 삭제 요청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 받을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구체적 방안과 가이드 라인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